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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모습

팔십동창들의 현주소

by 데레사^^ 2021. 1. 15.

초등학교  동창명부를  받았다.

돈 많고  너무 심심한  한 친구가  몇달에  걸쳐서  주소를  수소문해서

만들었다는  동창명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들은  전쟁의  와중에서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66년전의 일.

서울이 수복되어  피난온  친구들은  서울의  중학교로  떠나가기도  하고

경주에  남은  우리들은  변치말자,  편지 자주하자는  말을  주고 받으며

이별의 시간을  보낸  그리운  동창들의  주소록이다.

 

 

 

이 한권의  주소록이  주는  기쁨

받자마자  펴 보았다.

그래서  보고싶은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첫번째는  우리반에서  제일  키가 컸던  남학생,   10년전  단체로 한  칠순잔치에서

보고는  못 보았다.

따르릉  신호가  가고,  "누구세요?"   한다.

이름을  대고  반가운  인사를  주고 받다가   "나는 마누라  먼저 보내고  지금  혼자서

딸네집 근처로 와서  등산도  하고  텃밭도 가꾸며  살고 있다"  라고 한다.

그러냐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두번째  전화는   여자친구,    이 친구  역시 10년만이다.

"나는 무릎수술한건  좋은데  폐가 섬유화 되어 간다고  해서 진행늦추는  약을  먹고 있어서

 바깥출입은  잘 못한다"  는  근황.

 그래  조심하고  늘  건강해야 한다로  마무리.

 

 세번째도  여자친구,   지금은  호수가 되어버린  보문마을에  살아서  등,하교를  같이 했던  친구다

 "허리도  무릎도  너무 아파서  이제는  지팡이로는  안되서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한다.

  역시나  조심하고  건강 잘 챙기라로 마무리

 

네번째는  경주에서  양품점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다

아직도  장사를  하느냐는  내 물음에  "하기는 하는데  장사도  잘 안되고  그냥  동네할매들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한다.  무슨 놀이터냐니까  "고스톱 놀이터" 하면서  깔깔거린다.

그러면서  덧붙여 하는 말  "나는 두 무릎  수술하고  좋은데  영감이  욕실에서  넘어져서 뇌진탕이

와서  이제 겨우  살려 놓았어"  한다.

 

이 네 사람을  끝으로  나의  전화는  끝났다.  더 이상  전화걸어서  안부 묻기가  겁나서다.

 

옛날에  봤던  영화   "무도회의 수첩" 이  생각난다.

막 남편을  잃은 주인공 크리스틴이  그녀의  20년전의 낡은 수첩속의  무도회 파트너였던

일곱남자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맨 먼저 찾아 간  첫사랑의 남자는 자신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만 자살했고, 두번째

남자는  유능한 법학도였지만 지금은  카바레의 지배인으로 타락한 인물이 되어 있고

그리고  세번째,  네번째...... 모두  비슷하게  살아가거나  죽었거나  했다.

반세기도 더 이전에  본  영화라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그때  영화를  보면서

우리들은  나이들어  옛 사람  찾는 일은  하지말자고  했었던,  잊혀지지 않는   영화다.

 

아,  친구들도  다  나처럼  아프면서  늙어가고  있구나.

이제 다시는  동창회 주소록을  뒤지지  않을거야.

인생 1,  2 막을  다  살았으니  연장전이거니  생각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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