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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모습

나의 산 이야기

by 데레사^^ 2018. 1. 30.



산을  좋아했다.

대학을  들어가자 마자  산악부에  가입을  하고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난했던  우리는   먼 곳으로는  못 가고  주로  부산근교,   좀  멀리로는

경상남북도  일대의  산만  열심히  찾아 다녔다.

그때는  지금처럼  등산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등산로도  없고

우리는  남학생들이  군대에서  배워 온  독도법을   의지해서   미지의  산을

찾아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기  짝이 없는  등산복이었는데도   시골   마을에  들어서면

우리를  서커스 단원쯤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졸졸  따라  다니기도 했었다.

 



1960년대  초반쯤,   지도교수님과  함께.

원효산이었던것   같은데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당시는  특별한  등산복도   없어서  1,000미터가  넘는  산도   이런  복장으로

다녔다.  신발은  남학생들은  주로  군인들이  신는   워커를   국제시장에서 사서

신었고  여학생들은  운동화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발이  아픈줄도  몰랐고   잘만  다녔다.

 

이때의  잊을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

1962,6,10   영취산에서  야영을  하고  내려오니   돈이  바뀌어  있었다.

화폐가  개혁되면서  그날부터   이 전  돈은  모두  못쓰게  되었다.

가장  급한게  우리는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가진 돈들이  휴지가 되었

으니  차비가  있어야지.

할 수 없이  걷자, 설마  걷다보면  내일은  집에 들어가겠지   하는  기분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수완이 좋은  남학생이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서 사정얘기를

하고  여학생들만  태워 주었다.

 

오면서도  몇몇  친구들은  엄마몰래  숨겨둔  돈이  좀  있는데  어쩌지 하면서

울었다.

나는  화폐개혁을  초등학교 때  한번  경험했고   이때  경험했으니  두번이었지만

따로  꼬불쳐 돈이  없었으니  아무 걱정도  없었다.

그렇게   화폐개혁은  갑자기  시행되어  은행에  저금 해 둔  돈  외에는  못 쓰게

된다고  해서   친구들이  울고 불고  했는데  그후   그 돈들이  새돈으로 교환이

되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단위가  원이 었다가  환이 되고

환이었다가  원이되었던  사실만  기억한다.

 



구미  금오산에서  1박했을때의   사진이다.   1962년쯤  되리라.

뒤에 보이는것이  우리가  야영을  한  숙소인   천막이다.

 



산은  대부분  이렇게   길이  없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지도를  보면서  정상을  찾았다.

 



밥을  해서  먹었던  장면이다.

그릇을  자세히  보면  군용   항고(밥통)가   보인다.   저  항고에   밥을  하면

밥이  참  맛있었다.

 



이렇게  나뭇가지에다   항고들을  걸어 놓고   불을  때서  밥을 했다.

산불 내면  안되니까  각별히  조심을  하면서.

 



학교의  산악부원이면서   부산산악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부산산악회에서는  식목일에는    이렇게   나무심기 등산을  했었다.

금정산  병풍바위  있는 곳  부근이었으니   지금은   저   나무들이

아마  큰  숲을  이루었으리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몇년간  등산을   못하다가

아이들이  큰 후  다시  등산을  시작했다.

여기는   청계산이다.   주로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오후에  사무실이  있는

삼성동에서  가까운  곳으로  등산을  했다.

 



직원들과  함께,   강화 마니산.   1992년쯤…

 



비오는 날의  월출산  천황봉,   퇴직을  조금  앞두고다.

이  날   월출산  정상에  오른 사람중  제일  나이가  많다고   여기저기서

박수가  쏟아졌다.

 



퇴직후  한 10여년,   그러니까   일흔이  되기 까지는   이렇게   어울려서   이 산

저 산을  많이   다녔다.   이 때는  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서  지도도  필요

없고   간단한  먹을거리만  챙겨서  다니면  되었다.     이렇게  멀리  가는건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새벽마다   집  부근의  산을   매일  올랐다.

 

우리  집에서는  모락산,  수리산,  관악산,  청계산이   가깝다.   새벽에는

주로  수리산과  모락산을  다녔다.   특별히  정상을  고집하지   않고   두시간

정도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코스로  아침 운동으로   다녔다.

 

허리가   아파오면서   등산을  못했다.    야트막한  산에도  못  올라 간것은

수술 후 부터다.    이제는   본격적인  등산은  어렵지만   날이  풀리고

진달래가  피면  우리동네  모락산 정도는  올라도  될것   같다.

아,  옛날이여를   외쳐본들   이미  지나간  세월이고 ,   남은  세월중에서는

오늘의  내가  가장  젊은시절이다.

 

봄이여  어서  오라!

내  기필코   모락산이나  수리산의  슬기봉은   올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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