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은 뜨게질 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요즘은 TV 도 잘 안 본다. 드라마는 막장이 많고 뉴스는 속터지는것
뿐이라 유투브에 들어가서 흘러간 노래들을 찾아놓고 듣는걸
즐겨 한다.
팝송이던 가요던 가곡이던 다 옛날것이 좋은건 내가 이미 옛날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일거다.
그 노래들을 들으며 한 바늘 한 바늘 뜨게질 하는 재미로 며칠을
살아냈다.
특별히 뜨게질에 대해서 배운건 없다.
아주 어릴적 부터 엄마나 언니가 뜨는것 보고 어깨너머로 대충
배운게 내 솜씨의 전부다.
그래서 뭐든 얼렁뚱땅 눈대중으로 하는데도 완성해 놓고 보면
맞는게 신기하기도 하다.
페티 페이지를 좋아했다. 지금도 좋아한다.
그의 노래, 체인징 파트너나 앵무새 우는 언덕, 강아지월츠, 눈물의 웨딩……
이런 노래들을 들으면 귀가 호강을 하는것 같이 좋다.
이미 유명을 달리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나는 이 가수를 제일 좋아했다.
요즘은 유투브에 들어가 검색을 하면 모든게 다 있다.
주로 패티 페이지나 우리의 흘러간 가요, 세계의 민요등을 들으며
뜨게질을 하면 나는 참 행복한 할매같이 느껴진다.
어린시절, 초등학교 아주 저학년때 목화를 따고 난 밭에 가서
이삭을 줏어다 물레에 저어서 실을 만들어서 양말과
장갑을 짰었다. 그때는 이렇게 만든 무명실밖에 없었다.
그 무명실로 양말을 짜서 학교에 신고 갔다오면 그새 양말 밑바닥은
빵꾸가 나 있었지. 무명실이 약하거든.
역시 무명천으로 덧대어서 기워서 또 신고, 신고…. 그러다 보면
양말이 발등보다 발밑이 아주 두꺼워져 버리곤 했었다.
6,25 전쟁이 나던 해 나는 4학년이었다.
전쟁이 나자 미군들이 신던 양말을 시장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 양말의 실이 모(毛) 였다.
그 양말을 사다 물을 들여서 세타를 짜 입은게 내가 모직세타를
입어본 시작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편물점도 생기고 털실가게도 생기고 하면서
나는 참 많이도 옷을 짰다. 내것도 짜고 남편의 내복도 짜고
아이들 옷도 짜고……퇴근 해 와서 주로 밤에 하는데도 나는
이 뜨게질이 싫지 않고 언제나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다 뜨게질에서 손을 놓은게 한 이십여년 된다.
손주들 어릴때 목도리랑 모자 몇개 짜 주고는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해서 그만 둬 버렸는데 새삼 뜨게질을 해보니 역시
내 취미다.
ㅋㅋㅋ. 완성된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셀카를 찍어 봤드니
상 할매의 모습이 딱 버티고 있어서 세월을 원망해 보면서
낄낄거린다.
미국에 계시는 분이 미국에서는 핸드 메이드는 세계명품 보다 더
알아준다고 하는데 내가 저러고 나가도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쳐다 봐 주지도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올 겨울 나는 이렇게 하고 추위를 이겨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