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내게는 고향인 경주 이상으로 가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서 마지막 학교를 다녔고, 경찰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고, 서울로 왔다.
가고 싶으면 외국도 아닌데 KTX를 타면 몇시간이면 되는데 뭘
망설이냐고 하겠지만 내가 가고 싶은 부산은 그렇게 쉽게 가서
호텔에나 묵고 오는 부산은 아니다.
반겨줄 친구나 친척을 만나 손잡고 밤새가며 도란도란 옛 얘기를
나누고 올 수 있는 그런 부산이 가고 싶은데 그게 쉽질 않다.’
늙어버린 친구들 집을 찾아 가기에는 서로가 부담이 될것도 같고
그렇다고 불러내기에는 저마다의 스캐쥴이 쉽지 않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제는 반 정도는 남편이 없다.
우리들 나이에는 이혼은 거의 없고 대개가 사별이다.
그리고 남편이 살아 있어도 앓아 누웠거나 아니면 본인이 아파서
거동이 불편하다.
그러니 마음놓고 불러내서 하룻밤 같이 자고 올 수 있는 친구가
없다.
부산하면 동대신동쪽과 동래쪽을 제일 먼저 가보고 싶다.
물론 그때의 그 골목들, 그때의 그 집들은 아닐테지만 여기쯤이
그곳일거야 하고 다녀보는것도 재미가 있을것 같긴 하다.
동대신동 운동장에서 동아대학 가는쪽으로 녹지라는 다방이 있었다.
이 다방은 친구고모가 운영을 했는데 가난한 학생인 우리들에게
배려가 참 많았다. 시화전도 하게 해 주었고 차 한잔 안 마시고
몇시간을 노닥거려도 타박도 하지 않았었는데 아마 없어졌을거다.
그리고 부평동에 있던 오아시스 다방
이 다방은 마도로스 출신 주인이 음반을 많이 갖고 원하는 곡을 틀어
주곤 했었지.
아폴로 음악실에서 클래식만 듣다가 싫증이 나면 우리는 이곳에서
패티 페이지도 듣고, 클리브 리챠드도 듣고, 헤리 벨라폰테도 들었었지…
이 곳도 차를 안 마셔도 내쫓는 법은 없었는데, 아직 있을려나….
그리고 동래 온천장 쪽도 가보고 싶다.
금강공원으로 들어가 금정산도 올라보고 싶고 산성막걸리 촌에도
들려 보고 싶다.
만덕고개에 딱 하나 남아있던 주막에서 술도 못 마시는 여학생들과
술고래인 남학생들이 섞여서 입대하는 친구들 환송회도 했었는데…..
물론 부산의 바다도 보고 싶다.
저녁놀이 곱던 해운대, 화력발전소가 없던 감천의 그 바다에서
우리는 많은 추억쌓기를 했었는데….
사람은 젊어서는 희망을 꿈꾸며 살고 늙어서는 회상을 먹고 산다는
말이 딱 맞다.
이런 회상조차 없다면 요즘 같이 삭막한 세월을 무슨 재미로
버틸까 싶다.
이제 우리 아파트 마당은 겨울의 적막이 흐를뿐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감도 을씨년 스럽고 어느새 기지개를 켜는 목련도
예쁘질 않다.
추우니까 쓰레기 버리는 나오는 사람들만 보이고…
이 겨울 나는 무엇을 하며 지낼까?
수술때문에 쉬었던 중국어강좌도 1월부터 다시 시작할려고 등록을 했다.
도서관에도 새롭게 읽을 책들을 점 찍어 두고 왔고.
이 친구 저 친구 전화 해 보고 의논이 맞으면 부산이나 한번 휙 다녀
오는게 제일 좋을것 같은데 그게 될지는 모르겠다.
옛 그대로 아니어도 불평말고, 오늘의 부산을 보고 오면 그뿐일텐데
나는 왜 자꾸 옛것에, 옛친구에, 옛추억에 얽매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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