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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달걀을 보면 생각나는 아주머니

by 데레사^^ 2016. 3. 28.



어제는 부활절,  미사 후에  달걀  두 개를  받았다.

달걀,  지금은  흔해져서 귀한 음식도 아니고  콜레스테롤이니 뭐니해서

오히려  기피하는  식품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우리들

젊은 시절의  가정주부들은  달걀 하나  마음 놓고   자기 입으로

못 가져 가던  시절도  있었다.

달걀  한 꾸러미,  열개를  사 봤자   아이들 도시락 반찬으로,  남편의

보양식으로  상에 올리고 나면   여자들은  먹어보기도  쉽지 않았던

그  달걀,   부활절  달걀  두 개를  받아와서   거실  탁자위에   올려

놓고    나는  문득  오래전의   달걀  한 꾸러미를  내게 선물했던  어떤

아주머니를  떠 올린다.

 



40여년이  훌쩍  지나 간  그 때 ,   나는  서울  북쪽의  신설된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유치장에  절도로  수감된 아주머니가  이 경찰서에 근무하는  여경을

만나서 부탁할게  있다고   하니  나더러  좀  와 달라는  유치장 근무자의

부탁이  있어서  가 보았드니,  그 때의  나보다  두 서너살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너댓살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와  같이  유치장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드니

도둑질을 하다 잡혔는데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데리고  왔다고

이 아이를  교도소  갔다 올 동안  좀  맡아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관내에 있는 고아원을  찾아 가 부탁 드렸드니    맡아주겠다고

해서  아이는 고아원으로,  엄마는  교도소로…..  이렇게  헤어지고   나는

그 일은  깜빡  잊은 채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사무실로  나를  찾아 온  한 아주머니,   얼굴이  낯이 익은듯했다.

” 저  1년전에  아이를  맡겨놓고 교도소로 갔던……”

아,  이 말을 듣는 순간  얼른  그때의  그 일이 떠 올랐다.

만기가 되어 출소했다고   아이를  찾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와  함께  고아원으로  달려 갔다.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엄마를  보자  뛰어 나와  부등켜  안고  우는

두 모녀를  보며  다시는  죄짓지 말고   힘들드래도  일 해서  살아주기를

바라면서   그 들을  돌려 보냈다.

 

며칠후  달걀  한꾸러미를 사들고  그  아주머니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면서  찾아 왔다.   그때는  달걀을  짚으로  엮어서   팔 때다.

그 달걀을  보니  얼마나 작은지,  돈이 없어서  제일  작은걸로  산  모양이었다.

이걸  안 받으면   보잘것 없어서 안 받는다고 할것  같아서 웃는 얼굴로

받아 들고  잘 먹겠다고,  다시는  이런 곳에서 우리 만나지 말자고  하면서

보냈던    그  아주머니와  딸   생각이  부활절  달걀위에  어른 거린다.

 

아직은  살아 있을  나이이니    아주머니도  아이도  평범하게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리고   이 부활달걀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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