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지났으니 꼼짝없이 한 살을 더 먹어야 한다.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이 일이니 특별히 서러울 것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풍습의 변화를 이번 설에는 더더욱 실감했다.
우리 집 앞 농수산물 시장, 예년에는 섣달 대목이 되면 시장 안
주차장이 부족하여 큰 도로변에 까지 주차를 했는데 이번 대목에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시장 안 주차장도 많이 비어 있었다.
올해 환갑을 맞는 큰 딸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네 또래들 중에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명절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우리 집도 기제사는 다 안 지낸다. 설과 추석 두 번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차례를 지내자고 아이들과 의논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이제 내가 불 앞에 붙어 서서 하는 일을 허리가 아파서 잘 못하다 보니
차례 음식도 가짓수를 줄이고 줄여서 만든다.

나물 다섯 가지, 시금치 물미역 콩나물 무 도라지 나물이다

전은 애호박과 부추전 두 가지만 부쳤다.


오색 나물 하고, 탕국 끓이고 밥 하는 것 외는 모두 샀다.
과일과 떡은 물론이고 강정이나 약과, 식혜도 샀다.

이외에 곶감도 사고 밤은 깎아서 파는 걸 샀다.
차례상을 간소화하니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왔다는 제목의 글이 뉴스에
실리듯 우리 집도 간소한 건지 초라한 건지 이렇게 차례를 지냈다.
돌아가신 우리 시어머님이나 친정어머님이 보셨다면 욕 바가지를 하셨을 거다.
길거리를 내다봐도 어른들의 한복이나 아이들의 때때옷이 안 보인다.
TV에서 연예인들이 입은 한복만 보이는 설, 어릴 적 우리는 아침밥 먹고
친구들 몇 이서 어울려서 동네 노인들 계시는 집으로 세배를 다녔었다.
세배드리고 나면 곶감이나 대추 밤 떡... 이런 걸 주셨는데 그걸 주머니에
넣어 갖고 와서 며칠을 먹었다. 친척집에도 세배 안 가는, 세배가 돈 받는
재미로 변해버린 지금에 이런 얘기를 아이들에게 하면 전설의 고향쯤으로
생각할 거다.
사위가 내놓은 돈에서 반을 뚝 떼어 손녀 세뱃돈으로 줬다.
손녀도 어엿한 직장인이지만 내게는 그저 손녀일 뿐이니까 세뱃돈을 주었는데
넙적 고맙습니다 하고 받더라.
"이웃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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