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0월 24일, 그때의 오늘은 유엔데이로 공휴일이었다.
출근 안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진통이 와서 병원으로 급히 갔었다.
직장 다니면서 아이 셋을 낳은 나는 언제나 출근 전이거나 퇴근후거나
이렇게 공휴일인 날 출산을 했기 때문에 산전에는 하루도 쉬질 않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또
아들은 셋째이기 때문에 완전 비애국자 취급을 받으며 낳은 아이이다.
서러운 셋째는 학교 다닐 때 공무원 자녀들에게 주는 등록금 혜택도
못 받았다. 요즘 같으면 아이 셋을 낳으면 온갖 선물이 쏟아지는데
그때는 둘만 낳으면 삼천리는 만원이라고 극도의 산아제한을 권유하던
시절이었다.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일.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30만 원을 넣은 봉투를 주면서 뭘 먹고 싶냐고
했더니 갈비찜이 먹고 싶다고 한다. 아들더러 검색해서 식당을 택하라고
해서 둘이서만 갔다.
갈비찜 2인분, 배추 전 하나, 공깃밥 하나를 시켰다.
요양사도 누나도 매형도 오늘 띠라 다 바쁘다고 해서 둘이서 갔더니
내 호주머니 돈은 굳었다. ㅎㅎ
대신 누나가 토요일에 피자집에서 한 턱을 내겠다고 한다.
장가를 안 간 노총각의 아들, 등산 친구가 케이크 하나를 보낸 것 외 축하전화도
없는 것 같다.
늘 자기가 제일 편하고 행복하다고 주장하지만 엄마인 내 눈에는 그냥 측은
하기만 하다. 결혼해서 애 낳고 지지고 볶으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밥 먹고 돌아오면서 보니 우리 아파트 마당에도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예년보다 약간 늦었지만 나무들이 다 단풍들면 멋진데 아마 다음 주쯤은
아주 예쁠 것 같다.
아들의 일이 프리랜서다 보니 놀 때는 며칠씩 놀고 바쁠 때는 또 엄청 바쁘다.
오늘은 다행히 일이 없는 날이라 생일밥을 같이 먹었다.
지금이라도 좋으니 장가가라고 또 한 바탕 잔소리를 꺼냈더니
슬그머니 헬스장으로 가 버린 아들, 그래도 생일 축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