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마당에 모란이 피었다.
철쭉이 하도 많아 철쭉꽃그늘에 가려 몇 그루 있는 모란은 눈에
잘 띄질 않아서 꽃이 핀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오늘 우연히 병원 다녀오는 길에 차창으로 활짝 핀 모란이 보이길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진부터 몇 장 찍었다.
어느새 나뭇잎들은 연두를 넘어 초록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 속에 화려하게 피어 있는 모란, 모란을 보면 영랑의 시가 생각난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음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 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도 여러 종류의 색이 있던데 우리 아파트 마당에는 이 색 밖에 없다.
그림을 잘 못 그리는 나는 자수에는 소질이 있었다.
우리 전통자수로 모란을 수놓아서 액자를 만들어 혼수로 가지고 갔었다.
시어머님께서 우리 며느리 수 예쁘게 놓았다고 칭찬하시면서 툇마루 위에
걸어 두시고는 쳐다 보시곤 했는데 여러번의 이사로 나도 모르게 없어져 버렸다.
화려하고 예쁜 꽃 색, 모란에는 향기가 없어 나비가 안 날아 든다고 했는데
거짓말 같다.
코를 대 보면 냄새가 나는것도 같은데...
내가 거짓말 하는 걸까?
지금 우리아파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 철쭉과 함께 푸르런 나무다.
이럴 때는 1층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부럽다.
창문만 열면 꽃도 보고 나무도 볼 수 있으니까. 11층인 우리 집에서는 먼 풍경만
보일뿐.
이 풍경이 11층인 우리집에서 보이는 뷰다
하얗게 덮혔던 벚꽃은 언제 피었드냐는듯 흔적도 없다.
등나무도 꽃이 피기 시작한다. 쳐다보려니 고개가 아파 겨우 사진 한 장 찍었네.
요즘 계속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더니 오늘은 활짝 개었다.
하늘 보는 것도 어려워진 세월이다.
꽃잔디도 피었고.
해마다 가던 개심사 청 벚꽃도 문수사 겹벚꽃도 각원사 수양벚꽃도
올 해는 마음에만 간직한다. 그 어렵던 코로나 때도 한 곳 정도는 다녀 왔는데
아쉽다.
내년에는 몸이 좀 더 좋아지기를 바랄 뿐, 세월은 나를 점점 뒷방 할머니로
만들어 버린다고 슬퍼하거나 우울 해 하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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