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일본어 동아리 친구들을 만났다.
단톡으로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마스크 이후 처음으로 얼굴에 화장을 엷게 하고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약간 불안하지만 먼 길이 아니니까 지팡이는 집에
두고 만남의 장소로 갔다. 만남의 장소는 편리한 대로 새 중앙 교회.
아홉 명 중 여섯 명의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우리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셨던 아이가와 선생님은 쌍둥이 손주 보느라고
못 온다 하고 나머지 두 명도 손주 때문에 못 온다고 한다.
내가 밥을 사려고 했는데 미리 온 누군가가 밥 티켓 여섯 장을 사고 마시지도 않은 커피값도
지불해 놓고 있어서 나는 돈 굳었네 했더니 희남 씨가 형님이 많이 샀잖아요 한다.
내가 그랬던가?
3년 만에 본 얼굴들은 모두 조금씩 늙어 있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나름대로 늙어가는 건 공평하네. ㅎㅎ
은옥 씨는 그새 폐암수술을 했다 하고, 세희 씨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하고 경방씨는 남편을
보냈다고 한다.
할 말이 없어서 손만 꼭 잡아줬다.
15년을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던 사람들이다.
주민센터에서 기초부터 시작해서 15년을 아이가와 선생님에게 일본어를 배우던 멤버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공부 안 하니까 다 까먹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몇몇이서 내일 도쿄로 여행 간다고, 가면 말이 나올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 배우는 외국어는 계속 안 하면 까먹기 마련이긴 하다.
나는 일본어는 소설을 계속 읽으니까 별로 안 잊어 버렸는데 4 년이나 공부 한 중국어는
수인사도 어려울 정도로 잊어 버렸다.
우리는 4시간을 수다로 보냈다.
이런저런 사는 얘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뭘 하느냐는 얘기에는 모두가 아무것도 안 배워요가
답이다.
우리 동네 문화센터의 강좌가 모두 문을 열기는 했지만 일본어와 중국어는 폐강되었다.
일본어 15년 차, 중국어 4년 차가 되니 회원 모집이 안돼서 폐강이다.
외국어는 영어 빼고는 다 없어져 버렸다.
노래교실과 운동은 성황인데 나는 아직 운동을 나갈 수 있는 몸이 못 되어서....
3년의 세월, 나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아팠던 것 외 딱히 한 게 없다.
아프고 늙느라고 세월 다 보내 버렸고 마스크 쓰는 것만 익숙해져서 벗어도 된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쓰고 다닌다. ㅎㅎ
다음 달에는 빠진 사람 없이 다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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