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이가 친구 둘을 데리고 우리 동네로 찾아왔다.
운전을 그만두면서 기념으로 한 턱을 낸 다는 게 이유다.
까마득했던 시절, 자동차를 사서 운전을 시작한다고 한 턱을 내드니
여든도 중반에 접어든 이제는 운전을 그만둔다고 또 한 턱을 낸단다.
장소는 생선횟집, 먹고 계산하는데 보니 20만 원이다.
한 사람 앞에 5만 원의 비싼 음식을 사면서 서빙하는 사람에게 팁도 넉넉히 준다.
그러면서 운전 덕분에 인생이 행복했었노라고 고맙소를 연발한다.
겁쟁이 영순이가 운전을 하게 된 것이 내 권유덕이긴 하다.
내가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에 부임을 하면서 면허 없는 친구들에게 면허 따라고
권해서 50대이던 친구들 몇몇이 면허를 땄는데 영순이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때는 자동차운전면허 시험을 경찰에서 주관하던 시절, 지금은 그 업무가
도로교통안전공단으로 넘어갔지만.
겁이 많아서 면허를 따도 운전은 절대로 못 하겠다던 영순이는 학과는 바로 붙고
기능은 한 번 떨어지고 붙었는데 연수도 남보다 배나 더 오래 받았었다.
핸들 잡고 벌벌 벌, 카세트 바꿔 끼는 것도 자동차를 정지시켜 놓고야 하던 그 겁쟁이
영순이가 운전을 나보다 더 오래 할 줄이야...
나는 이미 5,6년 전부터 운전을 거의 안 하고 자동차는 지하 주차장에 쳐 박혀 있는데
영순이는 지금까지 운전을 했으니, 그러면서 운전할 수 있어서 자기 인생이 행복했다니
사람의 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여고시절 육사생도 하고 연애를 해서 대학도 안 가고 여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던 영순이다.
육사생도였던 남편은 임관을 하고 월남전 때 수류탄을 몸으로 막아 부하들을 구해내고
전사한 분이다.
그래서 월남전의 대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남편 없이 아들하나 키우면서 평생을 늙어왔다.
유족연금으로 생활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꽃다운 나이 스물여섯에 홀로 되었으니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내색 한번 없이, 추문 한번 없이 잘 살아 낸 대견한 친구다.
젊었을 때는 밥 값 서로 안 내려고 눈치 보던 내 친구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팔십 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밥 값을 서로 내려고 눈치를 본다.
그리고 이런 우스꽝스렁 이유를 달아서 밥을 사기도 하고... ㅎㅎ
모처럼 배 터지게 잘 먹었다. 영순아.
자동차 운전 안 하는 대신에 다리 운전 부지런히 하자.
누죽걸산이라던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말, 명심하자.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밥 사겠다고 하면 언제든지 달려는 못 가지만
지팡이 짚고라도 가서 먹어줄께. 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