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양감면에 있는 요당리성지는
신유박해(1801년)을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곳이다.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해년(1839년)과 병인년(1866년) 에 일어난 두번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로
유서깊은 곳이다.
성당 반 모임에서 며칠전에 이 곳 미사에 참석하고 왔다.
멀리서 본 성지 큰성당의 모습이다.
성지안 큰 성당의 정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양간 (현재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 느지지)
출신으로 성인이 되신 유일한 분이다.
1827년 양간에서 세례를 받고 1836년 양지의 회장을 역임했으나 주된 활동은
1843년 부터 1866년 순교할 때 까지 23년간 정착하여 활동한 제천의
배론신학교에서 한문교사 겸 선교사들의 집주인 역할을 하시다
1866, 3, 30 충청도 보령의 고마 수영에서 다불뤼 주교등 4명과 함께
참수 치명하였다.
큰 성당의 내부, 미사중이다.
성지안 작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작은성당의 마리아 상
작은성당 내부다. 큰 성당과 비슷하게 지어졌다.
순교자 묘역
정원이 아주 잘 가꾸어져 있어서 봄, 가을에는 소풍처럼 오는 사람도
많다.
요당리 성지는
첫째 장주기 성인과 124위 복자중 한분이신 정 토마스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이곳 출신으로 하느님의 종 지 다태오와 순교자
림 베드로, 조명오, 홍원여가 있으며 장주기 성인의 친척이자
순교자이신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등이 있다.
둘째 교회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고 끝내는 순교하신 민극기 스테파노, 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활동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 안드레아 성인께서
활동하셨던 곳이다.
셋째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순교하신 앵베르 범 성인과
이분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하신 손경서 안드레아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동안 요당리 성지는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장주기 요셉 성인의 출생지이고 교우촌이 형성되었던 곳이다라는 정도로
치부되어 관심에서 멀어져 있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덕기 바오로 주교
께서 2006년 9월 26일 성지전담 사제를 파견함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성지로서 천명하게 되었다.
본인이 잊지 않기 위하여 성지안내문을 발췌하여 나름대로 요당리성지에
대해서 정리를 해 보았다.
평촌 우리집에서는 멀지않기 때문에 아침에
서두르지 않아도 11시 미사 참석이 쉬우니까 가을에 교우들과 함께
다시 찾아 볼 생각이다.
'카톨릭성지,사찰,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성산 성지를 찾아 (0) | 2019.07.16 |
---|---|
우리성당 바자회 하던 날 (0) | 2018.10.22 |
궐리사 (2) (0) | 2018.05.10 |
궐리사 (1) (0) | 2018.05.09 |
수리산 성지에서 (0) | 2018.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