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으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 오죽헌은 오천원권 오만원권을 탄생시킨 곳입니다. "
" 세계최초 모자지간 화폐의 인물탄생 " .......
이런 현수막들로 빼곡 들어찼다.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 조차 힘들지경이다.
저승에서 사임당과 율곡선생은 과연 이 사실을 기뻐하고 계실까?
경축이라고 씌어진 현수막의 내용이 바로 "오죽헌은 오천원권과 오만원권 화폐인물을
탄생시민 곳입니다" 이다.
약간은 좀 황당한 기분으로 경내로 들어서니 깨끗하게 잘 정돈된 마당이 나온다.
여기도 "오만원권 화폐인물 신사임당" 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사방이 신사임당이 오만원권 화폐의 인물됨을 알리는 현수막과 포스터 천지다.
오천원권 화폐의 인물이신 율곡선생 동상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원형이 잘 보존된 대표적인 건물. 보물 165 호.
이곳 오른쪽 몽룡실에서 율곡선생이 태어났다.
왼쪽 오죽헌에서는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문성사는 율곡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文成 은 1624년 인조가 율곡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政事 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제각은 정조임금이 1788 년 율곡선생의 친필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릿글을, 벼루 뒷면에는 율곡선생의 학문을 찬양한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하라는 분부를 내리자 이를 보관하기 위하여 지은것이다.
격몽요결과
벼루. 여기서도 오천원짜리를 앞뒤로 붙여서 진열해 놓았다.
바깥채.
주로 남자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율곡선생의 외할아버지
신명화,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 율곡의 이종사촌 권처균이 거처했던 곳이다.
이것이 오죽이다. 오죽헌 안 여기저기에 이 오죽이 많이 심어져 있다.
담너머로 본 바깥채다.
바깥채 기둥에 붙은 이 글씨들은 추사의것이라고 한다.
강릉시립 박물관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시립박물관 마당에 놓여있는 항아리들..
오죽헌은 1450년 무렵 지어진 건물로 1505 년 형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이 둘째딸의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었다.
이사온은 외동딸을 서울의 신명화와 혼인서켜 딸만 다섯을 두었는데 그 둘째가
신사임당이다.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강릉의 친정어머니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러 있을때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을 낳았다.
또한 신사임당도 서울의 이원수와 혼인하였으나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이곳 몽룡실에서 율곡을 낳았다.
비록 시집을 갔어도 친정부모를 보살피려는 효 때문에 신사임당과 율곡선생이 여기서
태어나게 된것이라고 홍보물에서 읽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똑같은 사정으로 이곳에서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에 화페의 인물로 만나다니......
강릉은 신사임당의 5만원 화폐인물됨을 경축하는 포스터가 길거리 곳곳에 나부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