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을 정리 중이다. 무슨 사진들이 이렇게나 많은지 남길 것과 없앨 것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아이들하고 찍은 건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고 또 너무 아까운 사진은 없애기가 주저되기도 한다.
앨범을 보다가 문득 아, 라때는 이랬구나 하는 사진들 중에서 등산
사진들이 유독 지금과 너무 달라 여기 블친님들께 보여 드리려고 한다.
아마, 양산의 토곡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에 앉은 여자들의 발을 보면
실내화 같은 운동화다. 등산화가 따로 없던 시절, 남자들은 군대 때 신었던
워커를 신는 사람이 많았고 여자들은 저 운동화를 신었다.
저런 신발을 신고도 1,000미터가 넘는 산, 그때는 요즘같이 등산로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나침판과 지도를 들고 정상을 찾아다녔는데 저 신발들이
불편한 줄은 전혀 몰랐다.
1962년쯤 국제신문사와 합동으로 시민안내등반을 한 사진이다.
원효산이 1,000 미터에 가까운 산인데 해마다 시민안내 등반을 했다.
신문을 통하여 공고하고 시민들로부터 신청을 받아서 진행했다.
사진 맨 앞줄 왼쪽에 보면 한복 입은 분이 계신다.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1,000미터 가까운 산을 올랐다.
아까 한복 입으신 여자분, 이 사진에서 보니 핸드백까지 들었다.
김해 무척산을 생림 쪽에서 올라가면 폭포가 있었다.
바지저고리를 입은 할아버지는 700미터가 넘는 무척산을 저 차림으로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올라오셔서 산정의 호수를 보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야영을 할 때는 저런 식으로 밥을 해 먹었다.
군용 항고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불을 피워서 밥을 했는데 그 밥이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금정산 상계봉 부산산악회 조림지에 나무를 심고 나서
당시 MBC 라디오의 아침 방송 자갈치 아지매로 유명했던
김옥희 성우와 함께 찍은 것, 앞이 김옥희 성우다.
여기는 어느 산일까? 지도교수님과 함께 대학 산악부 시절이다.
몇 장의 사진으로 그때의 부산에서의 등산환경을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시골마을에 들어서면 서커스단이나 온 줄 알고 뒤를 따르며
구경하던 아이들이 있던 시절, 국문과의 학생이면서 나는 산악부로
들어갔고, 그 산악부 선배가 부산산악회의 창설멤버여서 우리도 다 회원이
되었다. 국제신보나 부산일보와 합동으로 시민안내 등반도 여러 번 했는데
주로 원효산과 금정산, 추석에는 달맞이 등산으로 달음산을 안내했다.
나는 주로 선발대로 뽑혀 몇 사람의 대원들과 같이 솥이랑 국거리를 메고 가서
국을 끓이는 담당을 했다.
100명이 넘는 시민들에게 국 대접을 산 정상에서 하다니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얘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참 많은 산을 잘도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라때는으로 정리하고 우리 집 거실에서 보이는 모락산과
수리산, 관악산을 눈으로만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