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또 술을 좀 마실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우스운 얘기같지만 나는 위의 세 가지 때문에 나름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8명씩 달리기를 해서 1,2,3 등에게는 상을 주었다.
나는 8명중의 꼴등도 못하고 무릎을 깨면서도 뒷줄의 3, 4등과 함께 들어와서
놀림감이 되면서 공책이나 연필로 주는 상을 못 받아서 엄마에게 많은 핀잔을
들었다.
옆집 영자나 길순이는 맨날 공책과 연필을 타 오는데 너는 어찌하여 종이쪼가리만
받아 오느냐고.
그 종이쪼가리는 공부 잘해서 받는 상장이었는데....
오늘의 사진들은 내가 걷기운동을 하는 길 가에 피어 있는 꽃들이다.
이름을 아는 꽃도 있지만 이름을 모르는 꽃도 많다.
굳이 이름을 알려고 노력은 안 하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이 꽃 이름이 뭘까고.
음치중에도 음치인 나.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부르는 노래는 음정이 절대로 안 맞는다.
그래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만 잘하면 선생님들이 음악이나 체육점수는
잘 주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등상을 못 받은적은 없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 노래방에 가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노래방에만 가자고 하면 사색이 되었지만 안 갈수도 없고 따라가면 노래 못한다고
빼주는것도 아니고 친구들은 꼭 노래를 시킨다.
요즘은 누구라 할것 없이 가수 뺨치게 노래들을 잘 부르는데 음정도 박자도 다 틀리게
노래를 불러대는 나는 죽기보다 더 싫은게 노래방 가는거다.
그리고 술 이야기, 솔직히 술을 마실 줄 알았으면 내 인생이 달라질수도 있었는데
술을 못 마셔서 낭패한적이 많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하나, 남대문으로 발령났을때다. 지역주민들이 환영한다고
식사대접을 하면서 맥주 한 컵을 권했다. 못 마신다고 해도, 활명수만 마셔도 취한다고
해도 기어히 권해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맥주 한 컵을 마시고는 기절 해 버렸거든.
병원까지는 안 갔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청심환을 사다 먹이고 난리였다.
이 소문이 돌아서 나는 그 이후로는 어느 부임지에 가던 술 권유는 받지 않았다.
대신에 직원들끼리 갈 때는 나에게는 연락도 없었다.
길에는 개망초도 피어있고 매꽃도 피어있고 산딸나무 꽃도 피어있다.
천천히 오래걷는건 잘 한다. 수영을 배울때도 둔한 운동신경 탓에 남보다 늦게
습득을 했지만 빠르지는 않아도 오래 할 수는 있었다.
서초동 살 때 아파트 단지에서 운동회가 있었다.
달리기를 못하는 내가 우리 아파트의 릴레이선수로 뽑혔다.
아무리 못한다고 해도 선수할 사람이 없다고 기어히 나를 끼워 넣었다.
단지안의 몇개 아파트 대항 릴레이는 반환점에 가서 우유를 한 컵 마시고
돌아오는건데 우리 아파트가 일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맨 마지막 주자였던 나, 우유를 빨리 마시지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해서 일등을 꼴등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여러사람에게서 등짝 스매싱을 당했다.
"무슨 경찰이라는 사람이 이러냐고? 이래서야 어디 도둑을 잡겠느냐고" ㅎㅎ
산딸나무꽃도 피어서 걷는 길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 간 삶, 윤회와 부활이 있다면 나는 절대로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공부만 잘하는것 보다는 달리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술도 잘 마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어쩌다 한 그루 있는 뽕나무에 오디가 열려있다. 따 먹을 수 있을려나?
아직도 울타리 장미는 곱게 피어있다. 아파트 담장에 핀 장미다.
작년에 돌아가신 언니, 언니는 얼굴도 예뻤고 노래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했다.
그러면서 공부도 1,2등은 아니지만 우등상은 늘 받아왔다.
나는 잘 하는게 딱 공부 하나 뿐, 다른것은 다 못했다.
그래서 때로는 왜 이렇게 낳아주셨느냐고 부모님께 원망도 해보았다.
코로나의 세월은 더 빠른것 같다.
어느새 올 해도 다섯달이 후딱 지나 가 버렸다.
이러다 금방 나의 인생도 끝나겠지 하고 생각할 때 마다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나를 달리기 잘하는 사람, 노래 잘 부르는 사람, 술 잘 마시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기원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