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엘 갔드니 묵나물 삶은것과 피땅콩, 호두, 잣, 그리고 오곡밥을 지을수
있는 혼합곡식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아,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지, 문득 올 해는 걸르지 말고 오곡밥도 하고
묵나물도 몇가지 볶고 부럼도 깨고 해보자고 장을 봤다.
취나물과 피마자나물 삶은것과 말린 호박, 가지... 이런걸 샀다.
굽지않은 김도 사고.
이제는 정월 대보름이라고 이렇게 차려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전에는 나도 명절에는 꼭 한복을 입었는데 귀찮아서 안 꺼내 입은지가 오래되었다.
내일 아침에는 한복을 한번 입어볼까?
갑자기 한복으로 차려입은 나를 보고 아들이 뭐라고 할까?
아무래도 엄마가 약간 이상해졌다고 할것 같지만 내일은 입었다가 바로 벗드래도
한복을 입어볼거다.
정월 대보름, 우리 어릴때는 설과 추석 다음으로 큰 명절이 대보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머리맡에 놓아주셨던 강정으로 부럼을 빠드득 소리나게
깨는것으로 대보름날을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피땅콩이나 호두로 부럼을 깨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설에 만들었던
강정, 콩강정이나 쌀강정으로 부럼을 깼다.
어른들은 술 한잔씩 하면서 귀밝이 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맨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았지.
"내 더위 사세요" 하고는 도망쳤다. 도망 안 치면 도로 더위를 가져가라고 하니까.
아침밥을 먹고는 친구들 몇몇이 어울려서 채나 키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밥을 한 숟갈씩 얻었다. 우리 고향에서는 보름 오곡밥을 약밥이라고 불렀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약밥을 가득히 얻어서는 디딜방앗간에 가져다 두고는
널뛰기를 하면서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남자아이들은 깡통에 불을 넣어서 돌리기도 하고 제기차기도 했다. 어른들은
달집 태우기도 하고 마을 대항 줄다리기도 했다.
달이 뜨면 우리는 디딜방앗간으로 모였다.
방아다리에 걸터 앉아서 달 한번 쳐다 보고 밥 한숟가락 먹고, 그리고는 따라 온
강아지에게도 한 숟갈 주고.
강아지들은 대보름에는 달 뜨기 전에는 밥을 안 주니까 우리가 주는 밥을 허겁지겁
먹으며 계속 더 주기를 바랬었다.
우리는 꼬까옷에 밥풀을 묻혀가며 낮에 얻어 둔 그 밥을 강아지와 함께 다 먹고는
달 쳐다보고 소원을 빌었었다.
(개 보름 쇠듯이란 말이 대보름에는 달 뜨기 까지 밥을 안주니까 생겨난 말이다.)
이제는 사라져 가버린 풍습, 정월달 내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해주던
풍물패도 이름조차 들어볼수 없는 세월로 변해 버렸는데 나는 그저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내일 아침에 부럼깨고 귀밝이 술이나 입에 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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