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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개 보름 쇠듯

by 데레사^^ 2020. 2. 9.



정월 대보름,  이제는  명절이라는 의미같은건 사라졌지만

그래도 해마다  오곡밥에  나물정도는  해 먹었는데  올 해는

아무것도  안 해 먹었다.

두 식구에  아들은  울산으로  출장가고  없고   혼자서  해먹을려니

귀찮기도  하고  솔직히  장보러 가는것도   무서운 세월이라  그냥

보내 버렸다.

 

요즘  헬스장도  폐쇄했기 때문에  낮에  햇볕이  좋은 시간에  한시간씩을

걷는데  같이 걷는  할매들  누구도  오곡밥  해먹었다는  말을  안하는걸

보니  코로나라는  괴물이  보름쇠는것도  앗아 가  버린것   같다.

 



한숨 자고 깨서  베란다로  나가서  달을  쳐다 본다.

둥글고  깨끗하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픈 언니를 위해,  또  우리 가족을 위해 잠시 두 손을 모아보기도 한다.

 

어릴적  정월 대보름날을   회상 해 본다.

눈 뜨면   엄마는  부럼깨기용으로  설에  만들어서  보관 해 두었던

강정들을  꺼내 주셨다.   강정을  한 입 깨물고는  “부스럼 물러가라”고

하면   일년내내  몸에  부스럼이  안난다고  했었다.

그리고는  아침 밥상,   오곡밥에  갖은  묵나물,   그리고  김도   있었다.

어른들은  귀 밝이 술이라고  아침부터  술을  한 잔씩  하셨고

밖에  나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붙들고  “내 더위 사가라” 고  외쳤던

그런  풍습은  이제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아이들은  소쿠리나  키를  들고  이 집  저 집  다니며  밥을  얻었다.

그 밥을  모아 두었다가  달이 뜨면   디딜방아가  있는  집으로  모여

방아다리에  걸터앉아  밥을  나눠 먹으며   개에게도  조금씩   던져 주었다.

정월 대보름날의 개는 밥을 주지 않았다.  밥을  주면  파리가 꼬이고

개가  여윈다고   달이 뜬 후에라야  밥을  주라고 해서   우리는  방아다리에

걸터앉아서  낮에  얻어 둔 밥을  내 한 숟갈,   너 한 숟갈,  그리고 개에게도

한 숟갈….. 이런 식으로  먹으며  보름날을  보냈다.

 



남자아이들은  깡통에 불을 피워서  동네를  뛰어 다녔지만

여자아이들은 방앗간에서 지지배배  떠들고  웃고 떠들기만 했었지.

 

그때는  정월 대보름도  며칠을  놀았다.  물론  시골이라  농한기니까

그랬을수도  있을테고.

낮에는  널 뛰기도  하고   마을끼리  줄다리기  싸움도  하고   농악대들이

지신밟기로  이 집  저 집  방문해서  풍악을  울려주기도  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다.

개 보름 쇠듯  정월 대보름날을  보내놓고  나는 또  먼 먼  추억속의

그날들을  그리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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