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지만 무서웠다.
이 책을 덮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 특히 혈육이 아니면서도 가족이 되었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이해득실에 따라 잔인한 짓도 서슴치 않게 행해질수
있겠구나 하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편칠 않았다.
꽤 많은 작품을 썼는데도 나는 이 작가를 처음 대했다.
싱가폴에 있는 딸이 그곳에서 읽었던 책들을 몇 권 가져다 주었는데
그 중 한 권이다.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했고 다소 쪼들린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남자는 박사논문을 완성, 모교에 자리를 잡았고 마당이 넓은
타운하우스를 사서 이사를 했다.
어느날 부부는 강원도로 짧은 여행을 떠난다.
운전은 남자가 했는데 사고가 났다. 여자는 죽었고 남자는
눈만 깜빡거릴수 있게 되어 버렸다.
여자에게는 일본인인 어머니가 있다. 남자에게는 장모인
여자의 어머니가 뒷 감당을 하면서 남자의 상태는 나아지는 기미도 없이
돈은 돈대로 들어 간다.
남자는 병원에 있고 싶었지만 장모는 집으로 퇴원시켜서
간병인을 두었는데 나중에는 그 간병인조차 오지 않게 되었다.
장모는 넓은 마당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장모는 남자를 구덩이에 데리고 들어갈 만큼 힘이 세지는 않았지만
남자를 방해할 정도의 힘은 있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구덩이로 굴렀다. 구덩이에 쳐 박히면서도 남자는
기쁘기도 했다. 머지않아 아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장모가 남자를 밀어넣기 위해 구덩이를 팠다거나 꼼짝도 못하는
남자를 장모가 들어내어 구덩이에 쳐 넣었다는 구체적인 얘기는 없다.
그러나 정황적으로 딸을 죽인 사위가 미워서, 돈은 자꾸 떨어져 가고
나아지는 기미는 없고….. 이런 사실들이 구덩이를 파게된 사연을 설명하는
셈이다.
남자는 아무것도 못하지만 남들이 와서 하는 얘기를 들을수는 있었다.
내가 만약에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이는 꼴로 누워 있을때 누군가가
문병이라고 와서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게 낫다” 라던가 하는 말들을
한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두려울까?
환자가 못 알아 들으리라고 생각하고 병실에서 아무말이나 하면 절대로
안된다는 교훈, 그리고 혈연이 아닌 가족은 진정한 가족이 되기가 참
어렵다는걸 느끼며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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