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교동도를 다녀왔다.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부터 별렀는데 이제사 찾아갔다.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꼬박 두시간을 달렸으니 말이 수도권이지
충청도 어디쯤 다녀오는것 같이 멀다.
북한과 가까운 위치라 다리를 건너기전 해병대 검문소에서
주민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교부 받았다.
“12시 까지는 나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 출입증을 나오실때
반납 해 주십시요” 하는 군인의 얼굴이 앳되고 해맑다.
그래서 같이 간 아들에게 물었다.
” 너도 이제 저 군인들이 자식같이 보이지?” 했드니
아들의 퉁명스러운 대답은 ” 자식은 무슨, 조카뻘이지요” 다.
ㅎㅎ 늙어가는 나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교동도는 생각보다 넓은 섬이다.
다리를 건너자 마자 보이는 넓은 들판, 꼭 무슨 평야지대에
온것 같다. 이렇게 큰 섬일줄 몰랐다.
비록 컨테이너 집들이지만 새 집들도 많이 들어서고 여기저기
건축의 모습들도 보이지만 사람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탓이라나.
출입증이다. 두 사람인데 한 사람만 확인하고 한장만 만들어 주었다.
교동대교, 2014, 7, 1 개통되었으며 총길이가 3,44 킬로다.
얼음에 덮힌 큰 호수가 나타났다. 섬이니까 당연히 바다인줄로
생각했는데 호수였다.
비석군, 교동섬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비석들을 한군데
모은것이라 한다.
섬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평야지대가 펼쳐졌다.
교동읍성이다.
인천시 기념물 제 23호인 이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이곳에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미터, 높이 6미터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을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
불렀다.
영조 29년( 1753년) 여장을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년)에는
남문을 다시 고쳤다. 동문과 북문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수 없으며 남문는 1921년 폭풍우로 무너지고 홍예문만
남았다.
성문을 들어서 보니 바로 민가다.
성문 안에 들어 가 뒷쪽에서 찍어 본 사진이다.
이렇게 담장 일부만 허물어진채로 남아 있다.
이건 뭘까? 설명이 없어서…
서해바다는 물빛이 곱지은 않지만 해넘이가 아름다운데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달리다 보니 이렇게 방치된 집들도 보인다.
잠자듯 조용한 이 섬도 이제 다리가 놓이고 개발이 시작되었으니
몇년후에 오면 달라져 있으리라.
지금은 시간이 멈춘듯 조용하기만 하다.
읍성을 나와서 대룡시장, 향교, 남산포구를 둘러보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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