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는 우아하다.
오늘날의 베니스는 순수한 관광도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1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원이라고는 물뿐인 손바닥만한 이 땅에서 무역입국의 지중해 대국으로 성장하며 버틴것이
기적같이만 생각된다.
앞은 바다, 뒤는 이민족 내습의 끊임없는 위협속에서 바다의 일부인 개펄지대를 관리하여
이렇게 우아한 물위의 도시를 건설한 옛 베니스인들에게 존경과 찬탄을 보내며
나는 베니스 여행 내내 그 불가사의를 생각했다.
베니스는 배를 타거나 걷거나 두가지뿐이다.
땅위에서 탈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를 출발하여 슬로베니아의 국경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자동차로 딱 네시간만에 베니스 관문까지 도착,
자동차는 주차장에 맡기고 시내버스 처럼 동네마다 정류장이 있는 배를 탔다.
베니스 운하는 배를 통과시키기 보다 물을 통과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베니스 운하의 특징은 육지를 파서 만든 수로가 아니라 섬과 섬 사이,
간석지와 간석지 사이에 물이 흐르고 있는 부분을 가장 깊은 곳만 남기고 양안을
나무말뚝이나 석재로 다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리알토다리
르네상스 양식의 흰석조 다리로 밑은 아취형이다.
화려한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다리.
이 다리 부근의 호텔에 들었기 때문에 여기가 베니스의 중심지라 이틀을 머물면서도
많은 구경을 할수 있었다.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도 저 무리들 틈에 끼어서 다리위에서 베니스 운하를 카메라에 담아본다.
이 사진과 밑의 사진은 같은 장소, 리알토다리 위에서 찍은것인데 위는 대낮에
아래는 저녁 어스름 무렵에 찍었다.
그랬드니 같은 장소인데도 분위기가 많이 틀린다.
만약에 나폴레옹이 없었드라면 베니스 공국은 아직까지도 건재했을까? ....
쓸데없는, 정말 쓸데없는 생각에 젖으며 계속 배를 타고 운하를 돌았다.
이태리 국기와 EU 기가 나부끼는 밑을 곤돌라를 탄 여행객들이 행복하게 지나가고....
자가용 배들. 집앞에 저렇게 정박해 있는 배들은 자가용이고 말뚝안은 주차장 (?) 이다.
산타마리아 살루테 성당이다.
1630 년 베니스 시민 15만중 그 3 분의 1 이 흑사병으로 죽자 의회는 흑사병을 멈추게
해주면 성모마리아를 기념하고 성당을 짓겠다고 기도, 신의 도움인지 흑사병이 물러가자
의회는 약속을 지켜 이성당을 건립했다. 1682 년까지 50 년 정도 공사를 했다고
한다. (성당 안은 여기뿐만 아니라 아무곳에서도 사진을 못찍었다. 찰영금지라...)
멀리서 본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
산마르코 광장앞에 떠있는 섬,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섬에 있다. 섬 이름과 성당이름이
같은 이 성당은 1610 년에 완공된 성당으로 내부에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것으로
유명.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성당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과 밑의 사진은 곤돌라 수리소를 찍은것이다.
곤돌라도 고장이 날테니까 당연히 정비를 하는곳이 있어야 하는데도 왜 신기하게만
생각되었을까? ....
아아 , 탄식의 다리.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다리는 두칼레궁과 노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로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이다리를 건너 노오베 감옥에 갇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살아서
돌아올수 없어서 죄수들이 한숨을 쉬며 건너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비록 죄인의 몸이지만 저 두개의 창문을 통하여 내다 보았을 세상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런데 이 감옥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도망나온 사람이 카사노바라고 한다.
베니스 공국이 멸망하기 10년전에 괴테는 이 도시에 와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것은 전부 고귀함에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하나로 통합된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생긴 위대하고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이 훌륭한 기념비는 어떤 한사람의 군주를 위한것이 아니라
전 민족의 기념비인 것이다 ~~ 라고 말했다.
정말 베니스는 우아하고 멋진 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