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에 위치한 삼성그룹 이병철 생가는
이병철이 태어나서 결혼해서 분가하기까지 살았던 집이다.
1851년 이병철의 할아버지께서 대지면적 1,907평방미터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지었으며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氣)가 산자락에 위치한 생가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기 때문에 명당이라고 한다.

이병철 생가의 대문이다.
이날 따라 이곳 날씨는 한 여름이었다. 더워서 주차장에서 골목을 지나
여기까지 오는데 땀이 너무 흘러서 골목에 있는 조그마한 카페에서 얼음을
넣은 음료수 한 잔을 마시고서야 좀 진정이 되었다.

생가 담에 붙은 안내인데 사람들이 많아 급하게 사진을 찍었더니 삐딱하다.

일자형의 평면형태로 지어 진 집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데도 깨끗하다.



어릴적 보던 살림살이들, 곡식을 계량하던 말, 돼 가 보인다.



마을 입구의 안내문

이병철 생가로 들어가는 마을은 벽화도 그려져 있고 곳곳에 이병철 생가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음료수를 사 마신 카페

마을은 집이 몇 채가 되지 않았지만 이병철 생가보다 더 큰 집도 있고
무엇보다 집집마다 문패가 달려 있는 게 요즘의 흉흉한 세상과는 거리가
먼 듯했다.
호암 이병철 회장님, 제가 경남청에 근무했을 때 그곳 지서 직원들이
설이나 추석 명절 때 회장님께서 제일모직 양복지 한벌 감 씩을 주신다고 자랑하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공무원 월급으로 제일모직 옷감으로 양복을 해 입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이었으니 그 양복지 한벌 감이 정말 대단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무리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어도 이렇게 큰 부를 이뤄냈다는 건
자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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