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다.
오곡밥에 갖은 나물을 준비하기는커녕 부럼 깨기를 위한 피땅콩 한 봉지도
사다 놓지 않았다.
귀찮고 허리 아프다는것이 핑계지만 살아오면서 이렇게 뭘 준비 안 해 보기도
처음이다.
어릴적 고향에서는 정월 대보름날 눈 뜨자마자 엄마가 가져다준 강정을
바삭 소리가 나게 깨무는 부스럼깨기 부터 시작, 오곡밥에 나물반찬으로
아침을 먹고, 어른들은 귀밝이 술이라고 술 한 잔씩 하셨지만 어린 우리들은
밥 먹은 후 키를 들고 나서서 집집 마다 다니면서 밥 한 숟갈씩을 얻었다.
이렇게 얻은 밥을 달이 뜨면 디딜방아가 있는 집에 모여 방아다리에 걸터앉아
달 뜰때 까지 쫄쫄 굶은 강아지에게 한 숟가락, 나 한 숟가락 이런 식으로 먹었다.
어제 시장을 다녀 왔는데도 이렇게 과일만 잔뜩 사 왔다.
부럼용 피땅콩이나 잣, 호두 이런 걸 사야 되는데 그건 잊어버렸다.
장 봐서 싣고 백운호수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밥 먹고 모처럼 호수둘레길을 조금이라도 걸어보려 했더니 이렇게 호수는
꽁꽁 얼어 있었다.
먼 산에는 흰 눈이 쌓여 있다. 걷기는 포기했다.
내일 오곡밥 대신 오늘 코다리정식이나 먹자 했더니 아들이 말하길
"찰밥 싫은데 좋아요" 다. 요새 젊은이들은 찰밥을 싫어한다더니 울 아들도 역시다.
많아서 다 못 먹어서 남은 건 포장해 왔다.
돌솥밥인데 밥이 바닥에 깔릴 정도로 적지만 이제는 이것도 다 못 먹는다.
올해 우리 집이 완전 "개보름 쇠듯이"가 되었다.
보름날 맨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내 더위 사 가세요" 하고 더위 팔던 일도
안 할 거다. 날 밝으면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아들이나 요양사인데 그들에게
내 더위를 팔면 그들은 또 어딜 가서 팔지....
우리 고유의 명절, 설과 추석 다음으로 큰 명절이었던 정월 대보름인데
보름달이나 볼 수 있을는지, 달이 뜨면 소원을 빌어야 할 텐데 그 또한 일기예보를
보니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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