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갖고 있는 몇 권의 책, 낡아서 펼치면 가루가 날리고 종이는 누렇게
변해서 볼품이라고는 없는 책, 겉으로 봐서는 고물에 틀림없지만 발행연도나
그 책을 사게 된 동기 같은 걸 생각하면 또 보물 같기도 하다.
박경리의 소설 표류도와 이상 전집 세 권,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또
이곳 안양 평촌으로 오기까지 열 일곱번의 이사에도 버리지 않고 끌어안고
와서 서재에 꽂혀 있는 이 책들을 버리려면 아깝고 두고 보려니 너무 낡아
먼지가 풀풀 난다.
이렇게 네 권이다. 내가 고물 같은 나이이다 보니 이보다는 낫지만 갖고
있는 책들이 반쯤은 고물이다.
이상 전집 3권, 1권은 창작집, 2권은 시집, 3권은 수필집이다.
단기 4291년도 판이니 서기로 1958년이다.
그런데 옆을 보니 4292, 10,19에 샀고 시 호반의 원고료로 샀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학 1학년때 학보사에 이 시가 뽑혀서 그 원고료로 산 모양인데 그 시는
지금 읽어 보면 너무 유치해서 소개 할 수도 없다.
세로 글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책 맨 마지막 장에 우리의 맹세가
쓰여 있다.
같은 세대의 분들은 이 우리의 맹세를 외웠던 생각이 날 것이다.
표류도, 박경리의 첫 소설집이다.
이 책을 출간할 무렵의 박경리, 젊은 모습이다.
이 책도 단기 4292년이니 서기 1959년이다. 특이한 건 돈이 환으로 표시되어
있다. 몇 년 후 화폐개혁으로 환에서 원으로 바뀌었다.
역시 세로 글이다.
오늘 이 포스팅은 책의 내용 소개가 아니라 책 그 자체에 대한 소개다.
대학 1학년 때 샀으니 60년도 더 전에 발간된 책들이라 그때의 출판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보물일까? 고물일까? 헷갈리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