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비슷한 생활이 3개월이 넘어갔다.
그간 한번도 친구들을 만나러 간적도 없고 영화관을 간적도 없고
심지어 성당조차 가본적도 없다.
성당은 몇주전 부터 문을 열기는 했는데 바코드가 찍힌 이름표를
달고 가야하고 또 거리두기 때문에 전 교인이 다 참석할 수 없어서
되도록 나이많은 사람이나 기저질환자는 집에서 기도하라길래
가지 않았다. 기껏 외출이래야 하루에 한 시간 남짓 동네길을 산책하는
정도로 참 잘 버티고 있다.
우리동네 산책로다. 이 길을 왕복하면 1,500보다.
만보는 잘 못 채우지만 보통 7,8 천보씩은 걷고 있다.
이 산책로도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코로나 이후 텅 비다시피
사람이 없다.
새벽마다 이 길을 걸으며 이웃들과 수다라는 수다는 다 떨었는데
이제는 누굴 만나도 서로 마스크 위로 눈 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이렇게 살다보니 생활비도 먹는것외는 거의 드는게 없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다 보니 화장품도 필요없고, 외출을
안하다 보니 옷도 필요없다.
장롱에 걸린 옷들을 쳐다보면서 뭘 이리도 많이 샀어 하면서
이걸 언제 다 입나…. 이렇게 중얼거리기만 한다.
병원도 안과와 칫과의 정기검진은 아직 안가고 있다.
그건 미뤄도 죽는 병은 아니니 하면서 참고 있고
국민건강검진은 했고 대장내시경을 할려고 접수하러
경찰병원을 한 차례 다녀왔을 뿐이다.
매주 정기적으로 가는곳은 마스크사러 가는 약국 정도다.
식료품은 대부분 쿠팡이나 이마트 온라인 몰에서 사서 배달시킨다.
불두화가 점점 꽃송이가 튼실해 지드니 이제는 꽉 차버렸다.
장미도 피기 시작하던데 좀 더 많이 피면 찍을려고 아껴둔다.
코로나 이후 완전실업자가 되어 버린 아들은 젊으니까 등산도 가고
친구도 더러 만난다. 그러나 아들도 늦게 집에 오는 법은 없고
언제나 일찍 들어 온다. 우스개 소리로 너는 이태원 안가니 하고
물으면 “나도 이제는 늙으서 그런곳은 받아주지도 않아요” 한다.
받아주면 갈거니? 에는 신경질을 확내고 자기방으로 휘익 가버린다.
어제는 재난지원금으로 파마를 했다.
머리가 길고 길어 히피족처럼 되어 버렸는데도 미장원을 안갔다.
큰 마음먹고 미장원엘 갔지, 미장원 사람들보기 민망해서
“아이들이 날 감시해서 못 왔어요” 했드니 미용사 왈” 여기 오시는
할머니들 다 자식들한테 거짓말해요” 로 답한다.
무슨 거짓말이냐고 재차 물으니 몰래 나와서 파마하고는 집에 가서는
“미장원에 가니 나혼자뿐이드라, 문 열어 놓고 손 소독제도 비치해 놓고
열도 재드라. 어쩌구 저쩌구….”
사실은 사람도 제법 많고 문 열어놓았지만 열도 안 재고 손 소독제도
물론 없거든. ㅎㅎ
물론 재난소득카드로 파마값 지불을 했다.
나중에 후손들이 지게될 빚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하지만.
앞으로 코로나가 물러가고 나면 우리들의 생활은 또 어떻게 변할까?
지금 이렇게 변할것이다, 저렇게 변할것이다로 왈가왈부들 하지만
닥쳐봐야 알 일이지.
분명한건 절대로 옛날같지는 않을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 거기에 맞춰 살아 갈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