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공원의 9경중 하나인 88호수 부근을 한 시간 정도 걸었다.
전형적인 한국의 가을날씨, 하늘은 높고 맑고 바람은 시원한 날이다.
걷기에 딱 좋다.
한하운 시인은 이 강산 가을길에 물마시고 가보시라, 수정에 서린
이슬을 마시는 산뜻한 상쾌이리라고 가을을 노래했지… 나는 시인의
이 싯귀가 참 좋다.
호수에는 이끼인지 풀인지가 많이 덮혀 있다.
그러나 물빛속에도 가을냄새가 나는것 같다.
날개짓이라는 이름의 작품이다. 물, 바람, 햇빛의
자연요소를 이용하여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부표원리에 의해
호수위에 떠 있는 17개의 날개들이 바람에 의해 좌우, 위 아래로
움직인다는 설명을 읽고나서 다시 쳐다보니 마치 날개가 퍼덕이는것
같기도 하다.
한 시간쯤 걸은 후 다리쉼을 할려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눈을 감고 30년전의 나를 소환해 본다.
여기 올림픽 공원에서 우리는 88 서울올림픽을 치루었다.
그때 나는 직업상 선수들과 관중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했었다. 행여라도 한 사람의 실수와 방심으로 올림픽에 누가
될까봐 전심전력을 다했던 젊은 나, 그리고 동료들… 그 팔팔했던
나는 어느새 할매의 반열에 올라 버렸다. 무심한 세월탓을 해서
뭘 하랴…..
그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사명감만은 투철했던 지난날이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것에 감사를 해야지…
마침 아무도 지나가지 않길래 긴 의자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
88 서울올림픽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가을하늘은 맑고 높고
아름답다.
이 올림픽공원안의 여러 경기장을 누비고 다니며 일하던것이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새 30년이 훌쩍 지나 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공원벤치에서 오가는 사람 눈치 안보고 누워버릴수 있는 염치없는 할매짓도
서슴치않고 하게되고.
하기사 흐르는것이 어디 세월뿐이랴, 나도 흐르고 너도 흐르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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