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 베르사이유 궁전은 규모부터 엄청나게 크다.
700 개의 방중에서 20여개만이 개방되고 있었지만 사람도 많고
넓기도 하고 소장품이 많아서 돌아나오면 거기가 거기같고 해서
어디를 어떻게 구경했는지 잘 모르겠다.
한정된 짧은 시간안으로 유명한 방 몇군데만 보고 오라고 가이드는
일러 주었지만 수신기를 끼고 있어도 도무지 제대로 찾아지지가 않는다.
210호의 거울의방 부터 시작하라고 했지만. 왕비의 침실에서 부터 귀족의방
근위병의방, 나폴레옹기념관, 전쟁의방, 평화의방, 비너스방 등등......
이렇게 나뉘어져 있는 방을 제대로 알아차리기가 쉽질 않아서 그냥
대충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볼수밖에 없었다.
1661년 부터 1710 년 까지 50년에 걸친 대공사끝에 탄생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왕권을 누렸던 루이14세가
파리의 루부르 궁에 싫증을 느껴 기존 사냥터였던 베르사이유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방대한 정원을 조성하여 거처를 옮겼던 것이다.
1682년 부터 1789년 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수도이자 통치 본부였던
이 곳은 절대왕권 절정기의 상징으로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궁전외벽의 장식이다.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이 화려한 홀에 반 정신이 나가 버렸다.
젊은 루이 14세는 프롱드 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난후 반란의 여지가
없도록 귀족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관리할 필요성을 통감하고
전 유럽을 압도할만한 새로운 궁을 지었다고 한다.
소장품들에 대한 설명이 수신기를 통하여 들려오기는 했는데
다시 듣고 또 들어도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이 안되었다.
어느방에선가 천정을 찍은것이다.
왕이 사용했던 의자라고 했는데 누구였는지는......
동양적인 부처, 어디서 가져 온 것일까?
이곳에는 왕실식구들의 초상화가 많았는데 누구인지 모르겠다.
루이 14 세의 침실이었다고 들었던것 같기도 하고....
아주 호화로운 의자들
여기는 유명한 거울의 방이다.
1919년 세계 1차 대전 종식의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장소
이 방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크다. 화려하다. 사람이 많다로 밖에 표현할수 없는 아쉬움,
어디를 다녀와서 설명이 이렇게 엉성해 보기도 처음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궁전 정원으로 나갈려고 해도 길이 쉽게 찾아지질
않는다. 화살표를 따라 가 봐도 아니고....
할수없이 제복입은 사람을 찾아서 물었드니 친절하게도 문 입구
까지 데려 다 주었다.
정원에서 바라 본 궁전의 뒷 모습
세계와 우주의 척도로 이 정원을 지었다고 한다.
더 안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루이 16세가 마리 앙뚜와네뜨를 위하여
지은 건물과 연못도 있다는데 그곳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
이 궁전을 처음 지은 루이 14세는 7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유명한 그의 말, 짐은 곧 국가다 를 잠시 떠 올려 보면서 이곳에서 살다
처형된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뚜와네뜨도 생각 해 본다.
그 절대적인 왕권때문에 핍박받았을 국민들도 많았을테지만 오늘날은
또 그들이 남긴 사치와 향락의 자취탓으로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는것을 보면 어느 쪽이 후세에게 좋은것인지는 판단이 헷갈린다.
이렇게 역사란 따지고 보면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
베르사이유 궁전을 이렇게 보고도 봤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