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은 물론 동양미술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 높인 고암 이응로 화백이
작품활동을 하였던 곳으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건물은 "ㄷ" 자형 초가집이며 이곳에서 삼라만상의 영고성쇠를 문자적 추상
으로 표현한 암각화를 조각하였다. (예산군의 홍보물에서 )
수덕여관을 예산군에서는 위와 같이 홍보를 하고 있지만 내 마음속의 수덕여관은
슬프기만 하다.
축복이나 영광, 명성과는 너무나 거리 가 먼 한 여인이 평생을 떠나간 남편을
그렸던 곳,
고암 이응로 화백이 나이 어린 제자와 함께 파리로 떠난후 혼자서 이 여관을 경영
하다 1968년 동백림사건으로 남편이 옥고를 치를때 그뒷바라지를 마다 않고 했던
화백의 본부인이 말년까지 사셨던 곳 수덕여관의 안주인이었던 그 분은 천사였을까,
아니면 바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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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로 화백이 이곳과 인연을 맺은것은 당시 이곳에 있던 선배화가 나혜석을
찾아온것이 계기라고 한다.
1944년 나혜석이 이곳을 뜨자 이집을 사들여 여관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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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여관이란 이 글씨는 이응로 화백의 친필이라고 한다.
지금은 여관이 아니지만 그 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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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암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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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서 풀려난 이응로 화백은 다시 파리로 떠나서 1992년 파리에서 회고전을
하던중 사망하고 본부인이셨던 박귀희 여사마져 2001 년에 한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버려져 있던 이곳을 예산군에서 사들여 보존해야할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
도기념물 103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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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관에는 어머니를 만나러 온 일엽스님의 아들도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고 부르라는 말에 눈물로 상봉했던 일엽스님의
아들도 나중에 스님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는 알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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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문화유산 답사기로 인기를 끌었던 유홍준이 답사때 마다 이곳에 묵으면서
이 여관 칭송을 하도 많이 해서 꼭 한번 머물러 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돈버느라
바빠서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
유홍준, 그의 책을 좋아해서 그 책에 등장하는 곳은 거의 다 가볼 정도로
열광했던 적도 있었는데 그가 권력의 언저리에서 보여 주었던 행태 때문에 절망도
하고 실망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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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연을 안고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수덕여관의 저 방은 이응로 화백이
쓰셨던 방이라는 간판을 달고 문이 굳게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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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로 화백의 작품 몇점과 함께 책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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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평상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었을 그때의 투숙객들 중에는 답사를 다니는
미술학도들이 많았다고 한다.
꼭 한번 머물러 보고 싶었는데...
젊은날에는 왜 그리도 시간도 없고 돈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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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내도에서 보듯이 수덕여관은 수덕사 선문을 들어서자 마자 왼편에
작은 개울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바로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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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엇을 기원하면서 쌓은 돌탑일까?
수덕여관
화가로서는 성공적인 삶이 었는지는 모르지만 한 여인에게는 철저히
잔인했던 이응로 화백과 그의 본부인 박귀희 여사의 이야기도 이제는
전설속에 묻혀버리고 수덕여관은 그런 사연을 아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념관이 되어 버렸다.
아아, 한 많은 수덕여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