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명승 센간엔의 저택은 1658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당초의 건물은
남아있지 않고 1884년에 개축된것이라고 하며 규모도 본래의 3분의 1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입장료 1,000 엔씩을 내고 들어왔지만 저택의 내부를 보기 위해서 다시
500엔씩을 내고 기모노 입은 안내인을 따라 구경하고 나서 말차 한잔과
과자 한개씩을 대접받고 되돌아 나왔다.
.
사진찰영은 물론 금지이며 일체의 개인적인 행동은 허용되지 않고
안내인이 안내하는대로만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게 되어 있으며 소요시간은
약 20분, 1회당 25명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센간엔의 이 저택은 시마즈(島津) 가문의 별저로 역대 영주들이 매우 사랑했던
곳으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방문한 손님까지도 매료시켰다고 한다.
사시사철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에 둘러쌓인 센간엔은 일본 근대화의 시작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입장권을 파는곳이다. 사쓰마번주의 별저 센간엔의 표지석이 서 있다.
이곳 역시 한국어로 어서 오십시오 하는 인사가 쓰여 있다.
입구를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대포, 에도시대 말기의 최강의 대포로
150 파운드나 된다고 함.
에도시대 말기의 최첨단 대포 주조시설이 있던 곳
1700년대 산의 신과 물의 신을 모시기 위해 만든 사당.
사쓰마번 무사의 정신, 지겐류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라는데 안에는
안 들어갔다.
지겐 체험코너라고 쓰여 있는데 무슨 체험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마즈 가문의 수력발전소 벽의 일부다. 1907년 광산 채굴에 필요한
전기공급을 위하여 만들었던 발전소라고 함.
19세기 말까지 센간엔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으며 지붕이 주석으로 덮혀
있는게 특징이며 당시 일본에서의 주홍색 문은 지위가 높은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함.
저 단체관광객은 일본인들인듯... 중국사람들도 많았지만 일본인들도
많았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곳에서 500엔씩을 다시 내고 저택투어를 시작했다.
사진찰영 금지였지만 도저히 참을수가 없어서 일행의 맨 뒤로 처져서
몇장 몰래 찍어놓고는 회심의 미소를.., ㅋㅋ
시마즈 타다요시가 옷을 갈아입거나 머리를 묶기 위해 쓰던 방이라는 설명
이었다.
손님을 맞던 응접실이라고 했던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잘 안난다.
몰래 사진몇장 찍느라고 일본어 설명을 잘 못 알아들어서...
19세기 중반쯤 부터 이 가문에서는 양식도 먹기 시작했다고 하며 1880년 부터
수력발전을 했기 때문에 이 방에는 샹드리에가 달려 있다.
500엔을 내고 저택구경이 끝난뒤 우리에게 나누어준 말차와 과자, 맛있긴
했는데 워낙 조금이라..
기모노 입은 아주머니가 한사람 한사람 앞에 절을 하면서 말차와
과자를 놓아주고 있는 모습이다.
붉은 카핏이 깔린 긴 복도에는 방이 여러개가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 저택에 살았던 시마즈 타다요시(29대) 는
아침 7시경 기상하여 선조들의 혼령에게 예배를 드리고 아침식사를 한후
9시경부터 서류결재등의 일을 하고 12시에 점심식사, 식사후 3시경까지
다시 일을 하고 4시경에 간식을 먹고 원내를 산책,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단란함을 즐기고 9시경에 취침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저택의 복도와 복도 사이에 작은정원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해서 몇장 찍었다.
20분 정도 머무르게 한뒤 우리는 단체로 저택투어를 끝냈다.
여기는 바깥에 있는 연못이다.
보카구로, 17세기 초 류큐(현 오키나와)왕이 상납한 건물이라고 함.
1892년에 완성된 시마즈가문 전용 수력발전댐
28대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여기에 대포제조, 유리공장등을 건설하고
1857년 이 공장군을 집성관이라 이름지었다고 함.
사쓰마번은 동양제일이라는 이 공장군을 중심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실행
하였다고 함.
관광버스가 아주 예뻐서....
1892년 시마즈 다타요시는 이곳에서 광산채굴용 기구와 재료, 소총, 도검등을
만들었다고 함.
이 센간엔의 부근에는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시마즈 다타요시가 일본 최초로
만든 방적소, 시마즈 나리아키라 시대의 유리공예공장등 시마즈 가문의 여러
유적지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 센간엔만 구경했다.
남의나라 역사, 그 역사속의 시마즈 가문에 대해서 더 설명할 실력도 재간도
없지만 참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은 지울수가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옛것을 잘 보존, 관리한 저들이 많이 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