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인조옷이나 사고 앞으로 닥아 올 중복이나 말복날 삼계탕에 넣을 수삼이나
살 요량이라면 굳이 장날에 갈 필요도 없는데 같은 값이라면 다홍치마라고
기왕 풍기에 갈려면 장구경도 함께 해보자고 의논들이 모아져서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던 첫날 18일에 풍기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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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찾아가는 곳마다 선현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 영주땅 풍기,
우리집 평촌에서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로 바꿔타고
달리기를 세시간쯤 했을까? 자동차는 드디어 풍기로 들어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2시간 20분 걸린다고 했는데 우리 자동차는
휴게소마다 들려서 쉬다가 오느라고 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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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크지 않은 시골읍이라 장이 서는 곳을 물을 필요도 없이 지난
가을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서 찾으니 쉽게 찾을 수 있다.
풍기기차역 앞에서 부터 드문드문 난장이 이어지는 풍기장 모습은
날씨탓인지 약간 한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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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철이라 그런지 마늘이 장에 많이 나왔다. 풍기에서도 마늘을
많이 심는지 가까운 단양이나 의성에서 생산된것인지 암튼 마늘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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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에서는 마늘 한접에 5,6만원씩 한다. 마늘이 너무 비싸서
많이 살 엄두를 못내고 되도록 양념에도 적게 넣곤 하는, 최근 들어
귀하신 몸이 되어 버린 마늘, 작년에도 비싸드니 올해도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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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접에 얼마냐고 물었드니 2만7천원에서 부터 5만원 까지 부른다.
물론 크기가 다르다.
우리는 한 접에 30,000 원 짜리로 한 접씩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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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이 나온게 복숭아, 자두, 살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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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살구를 3,000 원에 샀다. 한 입 베어 먹었드니 새콤달콤하다.
고향집 앞마당에 살구나무가 있었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의 고향집 살구나무는 우리를 행복의 나라로
데려다 주는 몇 안되는 군것질거리중 하나였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난 후 별로 살구를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서울에서는
잘 팔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가 눈에 보이는건 너무 비싸서 못 사먹었는데
여기서는 세상에 한 바구니가 3,000 원밖에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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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견의 고장답게 시장의 난장에서도 인견옷을 팔고 있다. 속바지나
민소매 부라우스 한장에 5,000 원씩에 판다. 이 아주머니가 직접 만들었다는데
시커먼 고무줄을 넣어서 바느질은 좀 마음에 안든다. 우리는 여기서
한두가지씩만 사고 가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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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견은 1930년경 가내 수공업 직기로 시작하여, 나무(펄프)에서
추출한 인견사로 짠 옷감이다.
면발이 좋아 남방, 잠옷, 실내복, 아동복, 이불등으로 적합하며 특히
여름철에는 더위를 한결 식혀주는 냉장고 옷으로 인기가 매우 높다.
요즘은 기술이 더 발달하여 외출복으로도 적합한 옷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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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가게는 자기들이 직접 베를 짜서 만들어서 판다고 한다.
그래서 가게 마다 무늬가 조금씩 틀리며 자기가게만의 독특한 무늬라고
선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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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여름에는 인견이불과 인견옷이 최고다.
친구들은 모두 몇벌씩 옷을 산다. 나는 지난 가을에 한번 다녀갔기
때문에 별로 살것이 없어서 그냥 민소매 부라우스 13,000 원 짜리 한개만
샀다.
인견은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 원피스는 35,000 원 내외이고, 바지는
30,000원, 부라우스는 13,000 원 부터다. 이불도 30,000 부터 시작하고
여름철 입기좋은 주름치마도 30,000 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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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견옷 쇼핑을 끝내고 나와서 수삼을 사러 인삼시장엘 들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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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인삼은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되어 타지방의
어느 곳 보다 내용조직이 충실하고 인삼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아서 21세기 웰빙 건강식품으로 평가받는 토종
특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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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인삼가게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보자 인삼차 한잔씩 부터 건넨다.
차게 해놓아서 마시니까 너무 시원하고 좋긴 한데 차를 얻어 먹고
다른 가게로 갈 수도 없고 해서 우리는 첫 가게에서 그냥 수삼 조금씩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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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이곳을 찾는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 잡은 정 도너츠
우리는 도너츠를 사기 위해서 공장까지 안가고 직판하는 가게를 물어 물어
찾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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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도너츠와 달리 이곳 정 도너츠는 찹쌀로 만들어 쫄깃쫄깃하며
겉에 생강을 발라놓은것도 있고 사과, 허브, 인삼등 다양한 앙금이
들어 있어 맛이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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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강 도너츠 3통을 샀다. 아홉개 들이 한 통에 9,000 원이니 한 개에
900 원,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맛과 향이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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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 우리는 장터에서 국밥이나 파전, 잔치국수... 이런것으로
점심을 먹자고 약속했었는데 풍기장에는 음식파는 난전이 없다.
시골장에서 좌판에 널린 음식을 골라먹는 재미도 좋은데 어쩐 일인지
풍기장에는 음식파는곳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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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도 덥고, 풍기에서는 맛으로 꽤 유명하다는 서부냉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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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냉면, 7,000 원이다. 아주 소박하게 생긴 그대로 맛 또한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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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풍기장 구경은 이것으로 끝이다.
장이 크지 않으니 별로 돌아 다닐만한 곳도 없다. 마늘과 살구, 복숭아,
자두가 많이 나왔고 간간히 콩같은 잡곡도 보이긴 했지만 별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시골장도 이제는 옛날과 많이 다르다.
곳곳마다 슈퍼나 마트같은게 들어 가 있으니 장날이라고 해서 특별할것도
없고 그저 그때 그때 수확한 농산물이나 내다 파는 정도로만 명맥이
유지되는것 같다.
풍기장날이라고 해서 특별할것도 없다. 인삼이나 인견은 모두 가게에서
팔고 있으니 일년내내 문 열어놨을거고 농사지은 마늘이나 살구같은것이
장날이라서 많이 나와 있을뿐 옛 정취는 사라지고 없다.
장날, 거나하게 취해서 지게에다 간고등어 한마리 사서 묶고 구성지게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시던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도시의 우리들에게 풍기장날은 구경거리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