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밑에서
대추 한 알
장 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께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아파트 마당에 몇 그루 있는 대추나무에서 대추가 영글어 가고 있다.
추석이 가까워 오니까 그 무덥던 여름이 자취를 슬그머니 감추면서
어느새 대추가 저렇게 익어가고 있다.
고향집 장독옆에 큰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나무도 컸고 대추도 많이 열렸었다. 아버지는 추석 대목장에
잘 익은 대추를 부대자루에 한가득 따서 장에 내다 팔아서
제수장을 봐오곤 하셨다.
효자 대추나무 덕에 우리집에서는 추석 장보기가 어렵지는
않았는데 어느핸가 그 대추나무가 잎이 오그라 들면서
말라버리고는 대추가 열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추나무가 미쳐 버렸네 하면서 베어버렸는데
그 후 나는 공부를 한다고 도시로 떠나와서 다시 대추나무를
그 자리에 심었는지 안 심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낮에 아파트 마당을 돌다 익어가는 대추를 보니 문득 고향생각도
나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이라는 시도 생각나서 나무밑에 한참을 서성거렸다.
가지를 흔들어 몇 알을 따 먹어 보니 어느새 맛이 들었다.
아삭하면서도 단맛이 짙다.
추석에는 더 맛있어 지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