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554- 597) 재위시 창건되었으며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 사찰이다.
그리고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 에 건립된것으로 현재까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말하기를
"수덕사가 아무리 망가졌어도 대웅전 건물이 건재하는 한 나는 수덕사를 무한대로
사랑한다. 이 대웅전 하나만을 보기 위하여 수덕사를 열번 찾아 온다해도 그 수고로움이
아깝지 않다" 고.

우리집에서는 서해안 고속도로 타기가 아주 편하다.
아침 7시에 출발했드니 9시도 되기전에 수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은 쌀쌀한
아침 날씨지만 절 경내로 들어서자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추위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들어서자 마자 부도밭이 보인다. 그런데 이 부도밭은 별로 오래된것 같지가 않다.

일주문을 지나면 둥근 원을 그리면서 돌아가던 그 넓고 한적한 길은 없어지고
마치 중국 무술영화에서나 볼수 있는 돌계단이 무지막지하게 이어져 있다고
개탄을 한 유홍준의 말을 떠 올리며 참 운치없다라는 생각을 해 본다.


돌 계단이 참 길긴 길다. 다리가 아프다.


국보 49호로 지정된 대웅전이다.
창건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다는 점에서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대웅전은 구조와 외형이 아주 단순하다.
단순성이 보여주는 간결한 아름다움이다.

대웅전의 측면, 둥근 기둥과 각이 진 들보를 노출시켜 모양새를 더욱
아름답게 보여 준다.




이 각도에서 보고 저 각도에서 보고....
여러 각도에서 쳐다 봐도 어느곳에서나 아름답기 그지 없다.
건축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그런 측면으로는 볼줄도 모르지만
눈에 보이는대로, 마음으로 느끼는대로 그저 아름답다라는 탄성만 되풀이 해본다.


이 사진은 대웅전 앞에 서서 아래쪽을 바라 본 정경이다.

배흘림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에만 있는게 아니네...

마름모꼴의 사방연속 무늬지만 이 창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 승방 견성암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견성암 건물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사진은 찍지 않고
내려 와 버렸다.

견성암쪽에서 바라 본 수덕사 대웅전 쪽 풍경, 산속의 절집이 고즈넉하게
보인다.

비구니들이 기거하며 수도하는 암자로 일엽스님이 열반한 곳으로 유명하다.

일엽스님은 1896년 생으로 본명은 김원주.
목사의 딸로 태어 나 조실부모한 후 23세에 이화여전을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 가
동경 영화학교에 다니다 귀국하여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시인으로서
신문화운동 신여성 운동을 하면서 숱한 화제를 뿌린 신여성이다.
화가 나혜석 만큼이나 소문난 여자였다.
"청춘을 불사르고" 란 저서를 젊은시절에 읽긴 했었는데 지금 내용은 전혀
기억에 없고
38 세의 신여성이 만공스님을 만나 머리를 깎았다고 한다.
이 환희대는 1971년 76세로 열반하기 까지 일엽스님이 거처하다 열반에 든
곳이다.

수덕사에는 만공스님, 경허스님 같은 훌륭한 스님들이 계셨던 곳이지만
나는 수덕사를 찾을 때 마다 일엽스님을 떠올리며 그분의 극에서 극으로 달린
생애를 생각 해 본다.
인생의 한창 시절의 그분이 쓴 시 한편
그대 웃어 주소서
으셔져라 꺼안기던 그대의 몸
숨가쁘게 느껴지던 그대의 입술
이 영역은 이 좁은 내 가슴이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 고운 모습들을 싸안은 세월이
뒷담을 넘는 것을 창공은 보았다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