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름
사계절 중 여름이 제일 견디기 힘들다.
땀도 남 보다 많이 흘리고 더위를 너무 많이 탄다.
어릴 때 엄마는 이런 나를 데리고 정월 대보름이면 밖에 나가서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아라고 하셔서 "내 더위 사 가세요" 하는
짓도 해 봤지만 그건 대보름날의 한 풍속일 뿐 아무 소용도 없었다.
집에 선풍기도 있고 에어컨도 있다.
돈 아끼지 말고 에어컨 팡팡 틀고 살려고 해도 그것도 쉽지 않다.
요즘엔 에어컨 밑에 오래 있으면 콧물과 기침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도 5,000 보를 채우느라 땀깨나 흘렸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선풍기 틀어놓고 찬 물에 샤워하고 난리를 부렸다.
우리 요양사는 나보다 20년 가까이 어린 나이인데 이 사람은 또 툭하면 추워요 다.
그래서 아침에 집에 오면 날씨를 물어볼 수가 없다.
추워요, 쌀쌀해요 해서 옷을 거기에 맞추어 입고 나가보면 너무 덥다.
몸도 불편하지만 더위 때문에 연꽃 구경은 절대로 못 간다. 여름 한 철은 수영장에
가는게 제일 좋은데 지금은 그걸 할 수 없으니 벗을 만큼 벗고 견뎌내는 것뿐이다.
이제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수국과 루드베키아만 조금 보일뿐이다.
밖엘 못 나가다 보니 재활병원 가는 시간과 걷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TV 다.
마당 있는 집도 보고 킹 더랜드도 보고 이따금씩 외국영화도 본다.
그리고는 인터넷 서평, 앞으로 두 달은 더위로 고생해야 할 텐데 여름 날 일이
끔찍하고 괴롭다.
판에 박힌 듯한 생활, 일 주일에 세 번은 재활병원에 가고 나머지 4일은 요양사와 함께
동네 길 걷고, 그리고 저녁에는 TV 에 매달리고...
어서 가을이 오기만 기다리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