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동짓달 스무엿새, 오늘이 생일이다.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라 음식점들도 복잡할거라고 큰 딸이
집에서 차리겠다고 한다.
음식 만드는 사람이 힘들지 나야 집에서 차리는게 좋고말고.
요즘 아침은 아주 간단히 먹으니까 점심에 차렸다.
미역국에 닭다리도 굽고 육전도 하고 잡채도 하고 여러가지 나물이며
한 상 잘 차렸다.
어릴적 엄마는 생일이면 꼭 팥을 넣은 찰밥을 해주셨다.
미역국에는 광어를 넣고.
결혼을 하니 시어머님도 똑 같이 해주셨다.
아이 셋 키우고 직장다니느라 내 생일은 까마득히 잊어 버리고
산 세월도 제법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
내가 기억 안해도 아이들이 챙겨준다.
1940, 11, 26 (음) 나는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경주였지만 아버지가 그때 영덕 우체국에서
일을 한 관계로 잠깐 영덕에 살때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
생전에 엄마는 내 생일이면 늘 말씀하셨다.
그때는 왜 그리 추웠는지 문고리에 손이 착착 들어 붙어서
산후 조리도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늘 힘들게 사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렇게 생일날은 내가 상 받을게 아니라 낳아주신 부모님께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데 두 분 다 옛날에 가셨으니…..
육전이다. 첫 솜씨치고는 꽤 맛있네 ~~
언니가 정신이 정정 할 때는 생일때면 전화라도 걸어오곤 했는데
이제 팔십 중반에 접어든 언니는 그런것도 챙길줄 모른다.
내가 오늘 생일이라고 하면 울것만 같아서 나도 전화를 안 한다.
부쩍 눈물이 많아진 언니는 내가 허리 수술할 때도 매일 전화를
걸어와서 우는 통에 나중에는 전화를 꺼놓기도 했었다.
남은 세월, 바라는게 딱 하나뿐이다.
사는날 까지 건강하게, 내 손으로 내 뒷처리를 할 수 있게
해 달라는것.
자식들 애 덜 먹이고 나도 덜 고생하고 사는날 까지 살았으면
하는게 소망이다.
뒤돌아 보면 그래도 실패했던 인생같지는 않다.
아이 셋을 낳아, 제 몫 하도록 키워냈고, 나 또한 젊은날에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고, 그 덕으로 노후를 생활고
없이 지낼수 있고…..
이 케익은 손녀 지수가 사 온거다.
나이가 너무 많아 양초를 다 꼽을 수 없어서 그냥 두 개만
꽂았다. ㅋㅋ
좀 있다 저녁먹고 성탄전야 미사를 갈려고 한다.
가서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