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로 유명한 시인, 신동엽(申東曄) 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 하는 쟁기꾼의 대지" 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69 년 타계할 때 까지 40년의 길지않은
생을 살면서 80여편의 시와 시극, 그리고 산문을 남긴 우리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부여를 여행하다 그의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걸 발견하고는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
문 열린 방이 시인이 거처하던 방
생가에서 문학관으로 돌아나가는 길목에 낙서가....
시인의 흉상, 조각가 심정수의 작품
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이 시는 4,19 때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며 쓴것이라고 한다)
시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이다.
시인의 육필 원고들
신동엽 문학관 건물이 부여가 자랑하는 3대건축물중 하나라는데
생가와 문학관 사이의 여백에서 사진을 찍어도 건물의 일부밖에
찍어지지 않아서 문학관을 못 찍었다. 어디 높은 곳에나
올라가야 렌즈안으로 들어 올것 같았지만....
신동엽 시인을 그는 추모되는 기억이 아니라 살아 격돌하는 현재이다
로 흔히들 평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는 조국의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 곧 외세와 분단,
그리고 부패한 권력에 대한 저항시들이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부여가 낳은 시인 신동엽, 부여군수의 인사말을 읽어보며 문학관을
' 돌아 나올때 우리가 마지만 관람객이었든듯 문이 닫히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동엽 문학관을 찾아 주시어 고맙습니다.
1960년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족시인 신동엽은 우리고장
부여의 자랑스러운 인물입니다. 1950년대 전쟁의 폐허속에서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던 우리 민족이 마침내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뚫고 분출한 4,19 혁명의 자유와 통일을 향한 시민정신을
드높이고 계승하여 1970년대 민족, 민중문학으로 발전하는 주춧돌이
된 시인입니다.
중략....
부여군은 신동엽문학관을 통해 신동엽 시인의 생애와 문학성을 조사,
연구하고 군민들뿐만 아니라 시인을 사랑하는 전 국민들에게 창작
활동과 정서 함양을 위한 공간을 제공함으로서 신동엽문학관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토대를 굳건히 다지는 지역문화의 산실로 거듭 날
수 있기글 희망합니다.
신동엽문학관을 방문하신 여러분께서도 시인의 숭고한 삶을 되비쳐
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여군수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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